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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그림책 Hidden Picture Book]....국민일보(Kukmin Daily) 2003. 01. 23

[어머니께 드리는 귓속말] ‘숨어있는 그림책'

풍경은 이야기를 감추고 있답니다. 이야기는 풍경 속에서 탄생하지요. 우선 그림자에 주목해 보세요. 길을
중심으로 빛과 그림자가 서로 대치하고 있네요. 그런데 이야기는 빛보다는 그림자쪽에서 수런대고 있군요. 자전거 앞바퀴의 그림자,길섶에서 마구 자란 초록빛 풀의 그림자,그리고 하늘을 나는 새의 그림자가 땅에
찍혀 있습니다. 바퀴가 새를 칠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지만 그건 그냥 그림자니까 새가 상처를 입을 리 없으니 안심하세요. 그림자는 서로 다투지 않으니까요. 그림 중간에 누워있는 커다란 나무 둥치 뒤에 숨어있는 토끼도 보이지요? 토끼를 발견해 내는 일처럼 단 한 글자의 설명도 없는 이 그림책에게 이야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답니다. 이야기를 만들어볼까요.

쓸쓸하고 외로워 보이는 아이가 집안에 혼자 누워있고,비둘기는 편지를 물고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지나 도시 한복판으로 날아옵니다. 비둘기는 다리를 건너 강변을 지나 정원이 깨끗하게 정리된 집에 도착하지요. 그 집 거실의 탁자에는 할아버지의 중절모가 놓여 있네요. 새는 할아버지와 손자를 이어주는 사랑의 편지를 물고 온 것이랍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책을 펼쳐보세요. 왼쪽 면의 그림과 오른쪽 면의 그림이 서로 다르게 배치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왼쪽 면은 새의 여정을,오른쪽 면은 한글의 닿소리를 상징합니다. 주의깊게 들여다보면 그림속에 숨은 ‘ㄱ’에서 ‘ㅎ’까지를 순서대로 찾아낼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자전거 바퀴는 ‘ㅇ’을 상징합니다.

숨어있는 그림책(그림 송명진·보림)은 처음 한글을 배우는 어린 아이에게 어울리는 그림책이랍니다. 그들에게는 길가에 있는 모든 간판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겠죠. 자신이 익힌 사과의 ‘과’자가 과자의 ‘과’자와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슬그머니 미소도 짓겠지요. 그 정도면 그림 속 풍경이나 사물을 보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꾸밀 수 있답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잔잔한 감동이 한참동안 일렁입니다.


정철훈기자 chjung@kmib.co.kr < 국민일보 2003.0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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