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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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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_안나푸르나 Annapurna 3 (2013 1.17 - 1.29)

  어제 스쿠티에 곁들인 한 잔의 술 때문에 아침부터 설사 증세가 있다. 화장실을 몇 번을 들락거리고서야 출발했다. 정상에 다가갈수록 상황이 힘들어지는데 컨디션 조절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아침부터 힘들다. 오늘은 하루 종일 오르락내리락하며 전반적으로 오르막길이라 힘든 산행이다. 원래는 데우랄리(Deurali, 3,200m)까지 가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었으나 그 아랫마을 히말라야(Himalaya, 2,920m)에서 일정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총8시간이나 열심히 걸었지만 역부족이다. 히말라야의 롯지는 시설도 열악하고 불친절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다들 데우랄리까지 가서 묵고자 한다. 히말라야 근처에 다다르자 운무가 몰려오기 시작하더니 어둑어둑해진다. 그래서인지 도착한 롯지는 더 을씨년스럽다. 게다가 히말라야 고지부터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다. 방안에는 타다 만 초들이 나뒹굴고 있다. 열악한 상황이긴 하지만 진짜 산장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오히려 신선한 감도 없지 않다. 이 높은 산에서 몸을 누이고 쉴 곳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어두컴컴한 식당에 모여서 식사를 한다. 참치피자와 버섯스프를 시켰는데, 의외로 맛이 좋다. 내일은 최종 목적지인 ABC에 오르는 날이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오르는 중에 고산증이라도 온다면 바로 하산을 서둘러야한다.

  다음날은 히말라야 롯지에서 새벽 일찍 출발했다. 칠흑같은 어둠이다. 하지만 금새 동이 터온다.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미끄럽지만 설산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다. 내 가이드는 산에 오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가난하기에 방수가 되는 등산화나 아이젠 같은 장비를 전혀 갖추질 못했다. 눈길을 걸으면 발이 젖어들고, 그런 채로 얼어버리면 동상이 걸리니 위험한데도 어쩔 수가 없다. 가이드를 통해 그들 삶의 고단함을 들을 수 있었는데, 타지인들이 와서 트래킹하며 돈을 쓰면 현지인들의 경제에 도움이 되긴 하겠지만, 각양각색의 옷과 장비들을 구비하고 와서 그들을 종부리듯하는 상황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할 듯해서 좀 미안하단 생각이 들었다.

  마차푸체르 베이스캠프(Machapuchre base camp, 3,700m)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눈길을 해치고 오느라 꽁꽁 언 온몸을 따뜻한 햇볕으로 녹이며 주문한 점심을 기다린다. 음식이 너무 늦게 나온다 싶었는데 그 사이 파랗게 청명했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더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마지막 고지를 오를 채비를 한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nnapurna base camp, 4,130m)까지 오르는 도중에 눈발이 휘몰아치기까지 한다. 재난영화 촬영이라도 하듯 악천후를 뚫고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ABC는 해발 4000m가 넘는 곳이지만 사실 일반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고, 전문 산악인에겐 등반을 시작하는 베이스캠프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곳은 고봉들에 오목이 둘러싸인 형세이고, 산 능선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사방으로 둘러싼 고봉들을 올려다보기에 최적인 장소이다. 컨디션이 나쁘다면 ABC를 찍고 바로 내려올 수도 있지만, 아직까진 고산증세는 없고 ABC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기 때문에 롯지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 불을 쬐며 발을 녹이며 식사도 하고 카드게임도 하고 있다. 창밖으로 눈발이 더 거세진다. 롯지 안이 아니었다면 아마 온몸이 눈에 파묻히지 않았을까. 현지인들은 이런 악천후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고 카드게임에 여념이 없다. 날씨가 개이질 않아 결국은 그 아름답다는 일몰은 보지 못했다. 어둑어둑해져도 다들 자러 갈 엄두를 못낸다. 방 내부는 외부와 온도차이가 별로 나질 않는 것 같다. 난방도 당연히 안되지만 건물 자체도 부실하다. 옆방과는 판자 한 장 정도로만 구분해 놓았는지 숨소리까지 다 들린다. 뜨거운 물 한병을 구입해 침낭 속에 넣어놓고 핫팩을 두 발바닥과 배와 등에 붙이고 옷이란 옷은 모조리 다 껴입는다. 윗도리 7겹, 아랫도리 4겹, 양말 3겹 뭐 이런 식이다. 그러고서 침낭 속에 들어가도 이가 덜덜 떨린다. 누워서 잠을 청하자니 옆방에서 누가 끙끙대는 소리가 난다. 발이 너무 시리단다. 내 양말 여분과 핫팩을 가져다주었다. 난 가장 살 많은 부위인 엉덩이가 너무 시려서 잠이 들질 못한다.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는데 머리가 깨질듯 아파 결국 깨고 말았다. 기듯이 겨우 일어나 두통약을 찾아 입에 털어 넣었다.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고산증인가 싶기도 했는데 너무 추운데서 움직임 없이 가만히 누워서 자니 혈액순환이 안돼서 머리가 아픈 것일 수도 있단다.

  끙끙대다 얼마나 잤을까. 일출을 보기위해 일찍 일어났다. 일출은 소문대로 역시 황홀했다. ABC에서의 일출은 떠오르는 해가 직접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설산이 붉게 물드는 장면을 보는 것이다. 주변을 잠깐 둘러보니 박영석 대장을 비롯한 한국 산악인 3명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안나푸르나 남벽을 오르다 실종이 되고 말았단다. 숙연한 마음과 함께 왜 인간이란 종족은 늘 높은 곳을 바라보고 꿈꾸고 정복하고 싶어 할까 궁금해진다. 대자연 앞에서는 한갓 먼지 한 톨도 안 되는 존재인데 말이다. 갑자기 여기까지나마 기를 쓰고 올라온 내 자신이 부끄럽고 허망진다. 희안한건 이 땅을 터전 삼아 사는 네팔인들은 굳이 고봉을 정복하려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산에 의지해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갈 뿐이다. 만년설에 덮여 콧대 높은 새하얀 처녀봉들을 정복하려 드는 것은 늘 이방인들이란 사실이 새삼스럽다.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다. 아침을 먹는둥마는둥 때우고 얼른 짐을 싸고 하산 준비를 한다. 머리가 아직 깨질듯 아프다. 그래도 하산길은 심적 부담을 덜고 난 후라 발걸음이 가볍다. ABC에서 하룻밤을 보낸 내 자신이 어쨌든 대견하다. 나를 받아준 산에게도 감사할 따름이다. 하산하며 고도가 점점 내려갈수록 거짓말처럼 내 컨디션도 점점 좋아지고 있다.  오늘은 내친김에 지누단다(Jhinudanda, 1,780m)까지 내려 가볼까 한다. 이 마을에 좋은 노천온천이 있다는데, 아침 일찍 가야 물이 깨끗하고 한적해서 좋단다. 그러려면 오늘 밤에 그곳 롯지에 도착해야 한다. 온천에 대한 기대로 느긋했던 하산길에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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