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니스, 파리에 입성하기 전 니스를 경유하기 위해 난 꽤 많은 시간과 돈을 추가로 투자해야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는 것이 결론이다. 비행기 스케줄 관계로 아쉽게도 오후 늦게야 니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오는 길에 창밖으로 문득 보이는 청명한 바다색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바로 바닷가로 직행했다. 해변에 닿기 직전에 만나는 탁 트인 마세나 광장도 모던한 멋이 있었고 도착한 해변은 그 색깔이 정말....수온도 적당해 수영하기에 좋았지만 해안이 모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굵은 자갈로 되어 있어 파도에 휩쓸리면 몸이 돌에 부대껴 무척 아프다. 물론 바다수영 후 샤워하긴 간편하지만 말이다. 이런 니스의 해안이 왜 그다지도 유명할까 처음엔 의구심이 들었는데, 다음날 돌아본 니스는 해안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품고 있는 도시였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해안과 청명한 바다색과 더불어 니스는 옛 시가지의 독특한 정취과 신시가지의 밝은 분위기, 적절히 자리 잡은 고즈넉한 미술관들, 관광객을 유혹하는 많은 쇼핑몰 등 아름다움과 풍요로움과 편리함을 모두 갖춘 세계적 휴양지로 손색없는 도시였다. 이른 아침에 올라간 성은 '천사의 만'이라 불리는 니스의 해안선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이며, 그 위에 자리 잡은 공원 또한 꽤 크고도 아름답다. 그리고 우연히 들어간 니스 현대미술관, 이곳은 관람료도 무료였지만 그 건물의 현대적 독특함과 더불어 컬렉션과 전시도 훌륭했다. 아름다운 휴양도시에서 느긋하게 감상하는 현대미술은 마음의 여유가 더해져서인지 더 가깝게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훌륭한 예술작품과 그것을 품은 도시, 또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니스의 이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현대미술관에 반해 니스에서는 미술관이나 갤러리엔 방문하지 않겠다던 내 결심과는 달리 길고도 가파른 오르막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샤갈미술관을 찾아갔다. 컬렉션도 좋았고 디스플레이도 훌륭했으며, 미술관 내부도 밝고 아름다웠다. 샤갈의 작품들은 익히 잘 알고 있지만 니스의 샤갈미술관은 특별하게도 성서이야기에 관련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종교색을 띠는 작품들은 제작한 샤갈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관람객 입장에서도 좀 더 진지한 태도로 작품을 대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샤갈미술관을 나와 오르던 오르막길을 계속 더 올라가면 마티스미술관이 나타난다. 이 미술관은 공원 또는 숲과 같은 나무들 사이 저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처음엔 미술관이라고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미술관 건물이 아담하면서도 예쁜 개인 저택처럼 느껴진다. 붉은색의 건물 외관과 그 앞에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된 나무 화분들이 잘 조화되어 처음 방문한 이로 하여금 미소를 띠게 만든다. 미술관의 소장품들은 대부분 마티스가 니스에 머물던 시절에 제작되었거나 남겼던 유품들 위주라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미술관 전체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자유롭고도 사랑스럽다고 해야 할까? 미술관 앞마당의 인상파 그림에서나 나올 법하게 생긴 나무숲에서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온 듯 재잘거리며 노는 풍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그리고 미술관 지척에는 한 수도원이 있는데, 수도원 성당의 내부도 무척 아름답지만, 그 정원도 나무모양과 꽃의 색 배치 등이 무척 조화롭게 꾸며져 있다. 수도원 한켠에 자리잡은 묘지는 비석들도 모두 조각품처럼 아름답고 주변의 큰 나무들도 잘 가꾸어져 있다. 이런 풍경들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사랑스러운, 자유롭고도 세련된 취향을 소유한 프랑스인의 감각을 느끼게 한다.
니스의 지척에 위치한 모나코 방문을 시도했지만 모나코 역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니스로 돌아오는 기차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늦은 오후에 도착한데다가 역에서 해변까지 가는 길이 꽤 멀고 복잡해서이다. 괜한 욕심을 냈다. 길에서 버린 시간을 니스에 좀 더 충실했더라면 훨씬 좋았을텐데 후회가 되었다. 그래도 모나코를 기차로 왕복하면서 창밖으로 스치는 니스 근교의 다른 해안들과 깎아지른 듯 한 석회암 절벽들도 구경할 수 있어 나름 좋았다. 다시 니스에 도착해 해안을 산책하면서 47일간의 유럽여행을 마무리했다. 니스가 내 여행의 마지막 도시라 기쁘기도 하고 빨리 떠나야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했다. 다음 기회에는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여유롭게 머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해수욕도 하고 맛난 것도 사먹고 그렇게 니스를 충실하게 누리고 싶다. 그리고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역을 좀 더 여행해 보고 싶다. 기회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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