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2012년 마지막 날과 2013년 새해 첫날의 경계를 델리에서 우다이뿌르로 가는 밤기차에서 넘었다. 밤기차의 척박함과 고단함은 이미 동유럽에서 겪은바 있으므로 패스! 우다이뿌르는 호수로 둘러싸여 있고 그 풍경들이 꽤 낭만적이어서 인도에선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는 도시라고 들었다. 기차는 의외로 제 시간 비슷하게 도착했고, 운 좋게도 꽤 맘에 드는 숙소를 찾았다. 작은 옥탑방인데 창문 한쪽으론 호수가 보이고 다른 한쪽으론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짐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 도시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리며 둘러보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쳐진 좁은 골목들을 처음엔 어찌 찾아다닐까 걱정했지만 어느새 길에 익숙해졌다. 우다이뿌르는 델리에 비하자면 훨씬 여유가 있고 아름다운 도시지만, 한편으론 좁은 골목길 사이사이를 누비는 오토릭샤들 때문에 공기오염이 도를 넘는다. 델리에서 사그라지던 감기가 또 다른 양상으로 심각해진다. 인도는 도시마다 오토릭샤, 사이클릭샤들이 너무 많아서 여행 중에 의외로 오래 걸을 일이 드물다. 그래서인지 뭔가 빠진 듯 여행이 싱거운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한국인 여행자들은 대부분 우다이뿌르를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도시를 방문하고 다시 돌아와 더 머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도시는 그나마 타 도시에 비해 밤에도 노천 까페에서 노닥거리며 짜이(인도식 밀크티)를 홀짝거릴 수 있을 정도로는 치안이 나쁘지 않다. 시원한 저녁 바람을 맞으며 호수변 까페에 앉아있으면 뉴델리에서의 긴장과 고단함이 좀 누그러진다. 여행자가 주로 몰리는 호수를 끼고 있는 풍광좋은 구역은 그나마 정비가 꽤 되어있지만 외각으로 나가보면 인도의 타도시와 별반 다를바 없다. 소란스럽고 척박하고 가난하다. 인도가 한국인에게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분명 싼 물가 때문일 것이다. 여기선 맘먹으면 나름 고급 식당에 가서 한 끼 푸짐하게 먹을 수도 있다. 물론 현지 물가에 적응되어 의외로 큰맘 먹기가 쉽진 않지만 말이다. 우다이뿌르에서 머문 마지막 날, 좋은 전망의 식당에서 양껏 먹었다. 인도여행에선 스스로에게 가끔 포상이 필요한것 같다.
여기선 슬리핑버스를 타고 사막도시로 유명한 자이살메르로 떠나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비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인해 묵직한 배낭을 맨 여행자들이 우왕 좌왕 자신의 행선지로 가는 버스를 찾지 못해 헤매고들 있었고, 사실 여행자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은 결국 이 시스템의 주인인 인도인들의 말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부터가 고민꺼리라는 점이다. 그리고 난생 처음 겪은 버스 2층 슬리핑칸. 이건 시체나 누일법한 관 사이즈와 거의 동일하다. 버스의 천정에 관을 매달아 붙여 놓았다고 하면 맞겠다. 아니, 우리네 고속버스 좌석 위 짐 올리는 선반에 미닫이문을 달아 사람이 그 위에 눕는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더 빠르겠다. 그 한 칸에 나도 눕고 내 배당들, 침낭들, 그리고 심지어 신발들까지 들여놓아야 한다. 없던 폐쇄공포증도 생길 판국인데, 넓은 평야를 떠올리며 수없이 마음을 가라앉히면 효과가 약간 있었다. 가끔 아래 칸에 앉아있던 인도인들이 머리위에 매달린 관에 누가 누워있나 궁금해 뚜껑을 열어볼 때가 있는데, 그럼 눈이 서로 마주친다. 난 누워있고 그치는 서있는데 눈높이는 서로 같다는 것, 그 느낌 참 거시기하다. 그날 난 닫아도 닫아도 다시 열리는 창문 밖의 찬바람과 그 바람에 휘날리는 더러운 커튼, 발위에 배낭을 얹을지 배낭 위에 발을 얹을지에 대한 고민, 욕심껏 먹은 저녁식사로 더부룩한 속과 밤새도록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이런 생지옥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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